예전에 대학생 때 국내 모 VC 하우스에서 어설프게 인턴 생활을 잠깐 했었는데요. 그때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 테이블에 참관해서 심사역들이 나누는 디스커션 퀄리티를 보고 솔직히 엄청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업의 본질이나 BM의 핵심 기술력을 날카롭게 검증하는 게 아니라, 대표 심사역(대펀)부터가 "근데 걔네(타 투자사나 유명 기관)도 이번 라운드에 투자 참여 확약(LOC) 한대?"라는 질문 하나로 모든 투자 결정의 정족수를 좌지우지해 버리더라고요 ㅋㅋㅋ 끝단에 레퍼런스 체크 용도로 가볍게 묻는 질문이 아니라, 유명 투자사가 숟가락 얹었으면 뇌 빼고 무지성 따라가고 아무도 안 들어왔으면 기술이 좋아도 일단 보류 때리는 헤드 멘탈리티 관행을 보고 '얘네는 투자해 놓고 그냥 물 떠놓고 기도나 하는 잡상인들이구나' 싶어 씁쓸했습니다 ㅠㅠ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ㅋㅋㅋ 사실 '누가 리드 투자자로 도장을 찍었냐'는 실리콘밸리 벤처 생태계에서도 신뢰도 리스크 방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게 보는 평판 지표이긴 해요. 다만 한국 시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투자사 자체의 확고한 밸류에이션 모델이나 하우스 정체성이 아예 부재하다 보니 오직 정부 정책 기조나 타 하우스 움직임에만 돗떼기시장처럼 오락가락 휘둘린다는 점입니다. 오죽하면 해외 투자 컨퍼런스 나가보면 글로벌 하우스들이 "한국 VC들의 서류 검토 프로세스나 에이전트 역량은 프로토콜 신뢰도가 너무 낮아서 신디케이트 파트너로 같이 일하기 껄끄럽다"는 소리까지 대놓고 하겠습니까 ㅠㅠ 투자하려면 심사역 본인들도 공부할 게 산더미인데 트렌드 단어 껍데기만 공부하니까 그래요.
국내 VC 펀드의 유한책임출자자(LP) 구조가 민간 자본이 아니라 대부분 중기부나 모태펀드 같은 정부 공공 기관 자금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 보니 일어나는 병폐이기도 합니다. 펀드 결성 조건(수수료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사후 밸류업을 위한 사외이사 파견이나 대기업 인프라 매칭 네트워크는 안중에도 없는 거죠. 특히 한국 대기업 제조사들은 스타트업의 핵심 원천 기술을 정당한 가치를 주고 투자하기보다는, "어차피 대기업 인프라로 사람 갈아 넣어서 카피 세팅하는 데 3년이면 충분한데 우리가 왜 굳이 비싼 돈 주고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해줌? 쟤네 자금 말라 죽을 때까지 버티다가 특허 뺏거나 헐값에 경영권 후려치면 장땡이지"라는 음해성 관성이 뇌리 깊숙이 깔려있어요. 테슬라 FSD 신기술 나오면 어떻게든 카피 언론 플레이로 똥칠해서 생태계 교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런 구태의연한 태도로 미국 실리콘밸리 진출했다가 기술 탈취 컴플라이언스 이슈로 된통 소송 맞고 담당 부서장 미국인으로 급하게 교체하는 쇼맨십 치는 거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ㅋㅋㅋ
"OO VC도 들어왔대?"라는 질문이 한심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국 벤처 생태계에서는 생각보다 합리적인 질문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초기 투자 시장은 정보 비대칭이 매우 큽니다. 투자사마다 대표와의 관계, 고객사 네트워크, 기술 검증 능력, 업계 평판 등 접근 가능한 정보가 다릅니다. 리드 투자사는 보통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대표를 만나고, 고객 인터뷰를 하고, 기존 투자자와 업계 사람들을 레퍼런스 체크하며, 계약 조건까지 협상한 곳입니다. 다른 VC 입장에서는 그 과정을 전부 다시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누가 리드했는가?"는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를 확인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처럼 투자사가 서로의 실사 역량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시장에서는, 특정 VC가 리드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VC의 검증 결과를 간접적으로 활용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